최근 20년간의 연구업적을 단행본과 논문으로 구분하여 그 목록을 게시합니다.

단행본 | 논문


  작성자 : 관리자   파일명 : 성주신앙표지(2).jpg, 용량 : 60KB     작성일 : 2002-10-10 오후 2:41     
  제   목 : 안동문화와 성주신앙
 
 
<<안동문화와 성주신앙>>이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2002. 8.30.)에서 간행되었습니다.

643쪽의 방대한 분량인데, 책의 머리글과 차례를 소개합니다.


머리말:성주신앙을 찾아 '집으로' 가는 두 길

영화 <집으로…>는 첫장만 봐도 안다. 영화 배경이 될 만한 오지 마을과 할머니만 잘 찾으면 당장 영화를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든 이정향 감독이 쓴 <집으로…>의 제작일기 첫대목입니다. 이렇게 마음먹은 이 감독은 오지 마을의 옛집을 찾아 나서면 그 마을 어딘가 찾고자 하는 할머니가 기다리고 계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현장답사 끝에 영동 궁촌리 지통마에서 해묵은 너와집을 제대로 찾았을 뿐 아니라, 같은 마을에서 허리 굽고 수더분한 김을분 할머니를 우연히 찾아내서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았습니다. 물론 영화도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 동안의 기록을 깨뜨리고 대단한 흥행 성과를 올려서가 아니라, 기존 영화의 틀을 깨고 새로운 영화 만들기의 세계를 독창적으로 구축해낸 까닭입니다.

성주신앙 연구도 <집으로…> 경우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성주신앙의 본향인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을 잘 포착하고 '성주신의 정체'를 제대로 잘 밝히면, 당장 저서 집필에 들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안동 제비원은 성주신앙이 뿌리를 내린 무대로서 궁촌리 지통마나 다름없고, 성주신은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으로서 김을분 할머니에 해당되는 까닭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안동과 제비원을 잘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안동문화의 지평 속에서 제비원의 문화적 좌표를 주목해야 성주신앙의 본향을 온전하게 포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나는 제비원 일대를 제법 잘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시집간 누님이 제비원에서 빤히 보이는 이천동 지르내에 살았기 때문에 중학교 다닐 때부터 이 지역을 자주 오갔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자형을 따라가서 직접 제비원 미륵을 보고 전설까지 들은 터였습니다. 그때 전설을 들으면서, 이여송이 미륵의 목을 베었을 때 흘렸다고 하는 핏자국까지 선명하게 보았습니다. 대학시절에는 일년간 누님댁에 머물러 살았을 뿐 아니라, 박사과정 때는 제비원 마을인 이천동 아랫지르내에서 구비문학 조사까지 한 터입니다. 그때도 제비원 관련 전설을 다수 수집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비원과 인연이 퍽 깊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주신앙에 관한 책을 쓸 수 있을 만큼 성주의 본향 제비원을 어느 정도 포착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더 벅찬 과제는 안동문화에 관한 것입니다. 안동문화의 다양성과 역사적 전통을 꿰뚫어 포착하는 일은 상당한 통찰력이 요구되는 까닭입니다. '추로지향(鄒魯之鄕) 안동'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안동문화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면, 안동에는 문화유산이 참 풍부하고 다양합니다. 지정 문화재가 경주에 버금갈 만큼 양적으로 많을 뿐 아니라, 문화재 내용에 있어서도 신라시대 왕실문화재와 불교문화재가 대부분인 경주와 달리, 시대별·계층별·종교별·남녀별·종류별로 다양성의 조화를 이루며 질적 수준도 잘 확보하고 있습니다. 경주문화재의 대부분은 국가 소유이고 유형문화재 일색이지만, 안동 문화재의 대부분은 민간소유이며 무형문화재의 비중이 상당히 높습니다.

그러면서도 안동지역에는 경주처럼 문화재가 눈에 얼른 띄지 않습니다. 안동의 문화는 고분 속이나 박물관 진열장에 갇혀 있는 박제된 문화재가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과 함께 하는 가운데 역사적으로 살아 생동하는 문화적 실체로 지역사회 현장에서 지속되고 있는 까닭입니다. 안동이 성주신앙의 본향이지만 안동 어디를 다녀도 성주신앙의 메카다운 문화유산을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성주신앙의 전통도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거나 유형문화재로 박제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적인 삶 속에 갈무리되어 있으며 지금도 현실문화로 살아 있는 까닭에, 눈여겨 찾아보고 한참 뜯어보지 않으면 결코 포착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학업을 마치고 안동에 돌아온 지 이제 20년 가까이 됩니다. 강산이 두 차례 변하는 동안 지역문화를 바탕으로 민속학 작업을 해온 결과 30여 권의 책을 펴낼 수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민속마을 하회여행}, {하회탈 하회탈춤} 등 지역문화를 구체적으로 다룬 것이 있는가 하면, {지역문화와 문화산업}, {안동문화의 수수께끼} 등 안동지역의 문화를 포괄적으로 다룬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현지조사를 통해 {한국구비문학대계} 안동편과 {까치구멍집 많고 도둑 없는 목현마을} 등의 자료보고서도 간행하였습니다. 이런 다각적인 작업을 통해서 안동문화의 전모를 어느 정도 포착하고 지역사회 민속문화의 역사적 연원도 추론할 수 있게 되어, 이 연구서를 비교적 짧은 기간에 순발력 있게 집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선행 연구들이 탄탄한 집터 노릇을 한 까닭에 단행본 차원의 새 집을 거뜬하게 지은 셈입니다.

성주신앙 연구를 위해 '집으로' 가는 데는 두 길이 있습니다. 안동문화를 통해서 성주신앙에 이르는 길과, 성주신앙을 통해서 안동문화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 두 길은 외길이 아니라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겹길입니다. 길을 나서는 출발은 두 길의 첫 지점에서 제각기 다르게 하더라도 정작 길을 떠나게 되면 사실은 두 길이 서로 소통하게 됩니다. 외길로 가고 오는 것이 아니라 겹길로 가면서 오고 오면서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안동문화에서 성주신앙 쪽으로 출발하는 첫째 길을 가고자 합니다.

안동지역에서 전승되는 전국적인 민속으로는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안동동채싸움, 안동놋다리밟기 등이 있는데, 이들 민속들은 한결같이 고려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동소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회별신굿은 탈의 제작시기를 근거로 고려중기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동채싸움은 고창전투와 관련된 전설을 통해서 고려초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놋다리밟기는 공민왕의 안동몽진과 관련하여 고려후기에 형성된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은 주로 전설에 의존한 것으로서 문화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그 이전까지 소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동의 민속문화는 대부분 고려시대를 역사적 연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안동문화의 지평 속에 있는 성주신앙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안동이 고려시대 이후에 비로소 역사의 전면에 떠오르게 되었다는 지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신라시대에는 안동이 고창군(高昌郡)이라는 신라의 작은 변방이었지만, 고창전투에서 고려 왕건이 안동지역 주민들의 도움으로 견훤을 물리치고 고려통일을 이룸으로써, 안동이 고려사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안동의 중요한 민속문화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연관되어 전설적 기원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을 고려하면 성주신앙의 연원도 이 시기와 연관되어 전승되는 것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이 지역이 '안동(安東)'으로서 지명의 정체성을 확보한 것도 고려시대부터입니다. 신라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 또는 고창군으로 일컬어지면서 상주(尙州)에 소속되어 있었으나, 태조 왕건이 고창전투에서 승리한 뒤에 안동의 '삼태사(三太師)가 견훤군과 싸워 이긴 공로를 인정하여 신라의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킨 것입니다. 이 때가 태조 13년(930)이며, 고창전투에서 견훤을 물리친 해입니다. 그 이전에 안동은 여러 지명으로 일컬어졌고 또 다양한 민속문화를 전승하고 있었지만, 우리 고대사가 주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정리되어 지금에 전하는 것처럼, 이 지역의 중요한 문화유산들 또한 고려시대 '안동부'의 승격으로부터 그 연원이 문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주풀이에서 한결같이 '성주의 본향이 어드메뇨 경상도 안동땅 제비원이 본일러라'고 노래하는 까닭도 고려시대 안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집니다. 우선 안동이라는 지명이 고려시대를 나타낼 뿐 아니라, 제비원 또한 역원제도가 시작된 고려시대에 비롯된 지명입니다. 따라서 안동 제비원이 성주신앙의 메카로 널리 인식된 것은 고려시대부터입니다. 성주신앙은 우리 민족의 토착신앙으로서 불교 전래 이전부터 지역사회에 자리잡고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성주풀이를 통해서 문화적 공감대를 널리 형성하고 안동이 성주신앙의 성지로 일반화된 시기는 놋다리밟기와 하회별신굿, 동채싸움 등과 같이 안동의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독창성이 확립된 고려시대부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안동이 민족사의 중심으로 떠오른 시기가 고려시대라는 것을 드러낼 뿐 실제 문화적 연원이 모두 고려시대라고 단정할 수 있는 근거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이전시기부터 자생적인 민족문화를 창조하여 전승해 온 문화적 역량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동의 문화사 속에서 성주신앙이 자리하고 있는 위치도 같은 맥락에서 재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주신앙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우리 지역에서 토착신앙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는 까닭입니다. 그것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신대륙이 거기 우뚝하게 있었던 사실과 마찬가지입니다. 성주신앙의 메카로서 안동 제비원에 대한 문화적 입지와 역사적 흐름을 어느 정도 인식하게 되면, 이제는 성주신앙의 정체를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성주신앙을 찾아 '집으로' 가는 두 번째 길을 성주에서부터 출발하고자 합니다.

민속신앙 연구자들은 성주를 '대주(垈主)의 신'이라거나 '가장(家長)의 신'이라고 하는가 하면, 성주를 상주(上主) 곧 옥황상제와 같은 천신(天神)의 변이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주는 가장과 일대 일의 관계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집의 건축물과 일대 일의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섬기는 주체가 비록 가장이라 하더라도 집이 없으면 성주도 없고 성주신앙도 없습니다. 가장이 불확실해도 집을 새로 짓거나 새 집에 이사를 가면 반드시 성주를 새로 내림받아 모십니다. 가장이 없는 집은 있어도 성주가 없는 집은 없는 것처럼, 가장과 상관없이 집집마다 성주를 매는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이 중심이 아니라 집이 중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성주는 '대주의 신'이 아니라 '집의 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주신앙 연구가 '집으로' 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가 보면 집을 지키는 신은 아주 많습니다. 가신신앙의 신격들은 직능신(functional god)에 해당되는 까닭에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구실에 따라 제각기 존재합니다. 성주 외에도 삼신·조왕·조령·터주·칠성·업신·측신 등 다양하게 있습니다. 집의 어느 한구석을 차지하고 집을 지킨다는 점에서 이들 신들은 모두 '집의 신'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모두 한 가족이되 가족마다 그 역할이 다 다르듯이, 가신들을 모두 집의 신이라 할 수 있되 집안에서 하는 기능은 모두 다릅니다. 삼신이 안방에서 아이의 잉태와 산모의 해산을 도와주는 출산의 신이라면, 조왕은 아궁이 속의 불씨를 지키고 음식을 관리하며 가족들의 건강을 돌보는 부엌의 신인 것처럼, 성주는 집의 상량이나 대들보에 자리잡고 가옥의 구조물을 지탱하는 건축의 신입니다. 따라서 성주를 '집의 신'이라고 하는 것은 곧 건축물로서 집의 신이라는 뜻으로 한정됩니다.

성주가 건축신이라는 것은 서사무가나 고대기록에서 성주를 성조(成造)로 일컫는 데서 잘 드러날 뿐 아니라, 배성주 신앙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집을 지었을 때만 상량을 하며 성주를 모시는 것이 아니라, 배를 새로 건조했을 때에도 배성주를 모시는 성주굿을 합니다. 집을 지으면서 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집을 역학적으로 지탱하는 핵심 구조물에 성주신을 모시는 것처럼, 배에도 배의 이물이나 선장실에다 배성주를 모십니다. 모진 풍랑에도 배가 파손되지 않고 무사하도록 배의 구조물을 지키는 신이 바로 배성주입니다.

성주의 정체가 건축의 신이라는 사실은 배성주뿐 아니라 성주풀이 노래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주가 석가이자 예수에 해당된다면 성주풀이는 불경이자 성경에 해당됩니다. 따라서 성주굿을 할 때는 반드시 성주풀이를 노래하게 되고, 성주풀이 내용을 잘 이해하면 성주의 정체도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주풀이는 한결같이 집을 짓는 사실과 연관되어 있는데, 두 가지 유형이 있어서 퍽 대조적입니다.

하나는 천상의 신격들이 하늘나라를 중심으로 사건을 엮어가는 성주풀이인가 하면, 둘은 지상의 사람들이 안동 제비원의 솔씨에서 자란 소나무로 집을 짓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는 성주풀이입니다. 앞의 성주풀이가 성주신을 주인공으로 사건을 엮어가는 서사무가라 한다면, 뒤의 성주풀이는 나무를 구해서 집을 짓고 살림살이하는 과정을 자세하게 서술한 교술무가라 할 수 있습니다. 서사무가가 천상세계의 신격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관념적으로 노래하므로 성경의 구약에 해당된다면, 교술무가는 현실세계에서 목수들이 집 짓는 과정을 실감나게 노래하므로 성경의 신약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 탄생을 전후로 성경의 신구약이 나뉘어진다면, 성주풀이는 제비원 솔씨에 의한 소나무의 출현 전후로 성주풀이의 신구성주풀이가 나뉘어지는 셈입니다.

구성주풀이에 해당되는 서사무가는 다시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하늘의 신격이 죄를 지어 인간세상에 귀양왔다가 나무를 심고 가꾸어서 집 짓는 법을 인간에게 처음 가르쳐 주고 성주신으로 좌정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은 목수가 아내를 빼앗겨서 궁지에 몰렸다가 마침내 아내를 구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룬 뒤에 성주신으로 좌정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앞의 성주풀이가 집 없는 사람들에게 보금자리를 지어준 구조물로서 '집(house)의 신' 곧 '건축신'에 관한 이야기라면, 뒤의 성주풀이는 잃어버린 부인을 되찾아서 부부관계의 파탄을 수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 '집(home)의 신' 곧 '가정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건축신인 성주가 처음으로 집 짓는 법을 인간에게 가르쳐 준 최초의 목수라면, 가정신인 성주도 사실은 천상 궁전을 짓는 당대 최고의 목수입니다. 결국 구성주풀이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처음 집을 지은 최초의 목수와, 집을 가장 잘 짓는 최고의 목수로서 한결같이 목수에 관한 이야기인데, 굳이 두 종류의 성주풀이가 필요할까요. 목수가 집(house)만 번듯하게 잘 지어서 집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화목하게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 온전한 집(home)이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참으로 요긴한 노래로 인식됩니다. 집을 짓는 일은 쉬우나 정작 가정을 만드는 일은 퍽 어려운 까닭입니다.

성주풀이의 내용에 따라 쓰임새도 다릅니다. 새 집을 처음 지을 때는 최초의 목수로서 건축신이 등장하는 앞의 성주풀이가 긴요하다면, 대주의 생년에 따라 성주치성을 드리는 굿을 할 때에는 화목한 가정을 이룬 최고의 목수로서 가정신이 등장하는 뒤의 성주풀이가 긴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최초의 목수로서 새 집을 번듯하게 짓고자 하지만, 집을 지어서 보금자리를 이루고도 부부관계가 파탄을 이루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물리적인 주거공간으로서 집보다 가정의 보금자리로서 집을 이루는 것이 더 소중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목수는 튼실한 집을 짓는 것에 머물지 않고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절묘하게 일깨워 주는 것이 두 성주풀이의 서로 다른 기능입니다.

신성주풀이에 해당되는 교술무가도 두 가지로 존재합니다. 이 무가는 천상의 성주신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하는 것이 아니라 앞집의 김대목과 뒷집의 박대목처럼 예사 사람이 등장하여 집을 짓는 현실적인 이야기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는 전형적인 교술무가로서 안동 제비원의 솔씨가 성주목으로 자라는 데서부터 목수가 나무를 베고 다듬어서 집을 짓는 과정들이 자세하게 노래되는 것입니다. 둘은 교술무가와 연관되어 있는 주술무가로서 집을 다 지은 뒤에 집안의 풍요와 자손의 번성을 기원하는 축원 내용이 주술적 방식으로 노래되는 것입니다.

천상의 신들이 등장하는 서사무가와 달리 교술무가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배경은 모두 현실적인 인물이고 현세의 지리적 공간입니다. 그것은 마치 천상에 존재하는 하느님의 천지창조 사업을 기록한 구약성경에 대해, 예루살렘의 마굿간에서 태어난 예수의 탄생과 그 행적을 기록한 신약성경과 같습니다. 그리고 주술무가에서 노래하는 집치레와 살림살이, 가족들의 성취에 대한 묘사는 한결같이 지상 최고의 것입니다. 유감주술적 기대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셈입니다. 현실적으로 집을 잘 지어도 살림살이가 가난하고 자손이 잘 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집을 잘 짓듯이 가정도 다복하게 잘 일구어 가자는 뜻으로 주술적인 축원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성주풀이를 오솔길 삼아 '집으로' 가면, 최초의 구조물로서 집과 화목한 가정으로서 집, 그리고 잘 갖추어 지은 외형으로서 집과 살림살이가 풍요로운 내실 있는 집을 함께 만날 수 있습니다. 새 집은 짓지 못해도 화목한 집은 만들 수 있고 외형이 번듯한 집은 몰라도 살림살이가 알찬 집은 꾸려갈 수 있습니다. 풍물잡이들이 해마다 집돌이 풍물을 치는 가운데 성주풀이를 노래하며 성주치성을 드리는 것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가운데 살림살이가 풍요로운 집을 꿈꾸는 까닭입니다.

영화 <집으로…>에는 '우리집과 외갓집' 또는 '시집과 친정집'이 대립적으로 존재합니다. 물론 주인공의 우리집이나 어머니의 시집은 관념적으로 등장하고, 주인공의 외갓집과 어머니의 친정집은 현실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영화의 실제 무대로 나투어지는 집은 외갓집뿐입니다. 현실적인 외갓집을 통해서 관념 속의 우리집이 상상 속에 반추됩니다. 주인공 상우는 우리집에서 외갓집으로 갔다가 다시 우리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냥 되돌아온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나서 돌아왔습니다. 이 책도 안동문화에서 성주신앙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안동문화로 되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성주신앙의 본향답게 안동문화를 다시 가꾸어가야 한다는 각성을 새롭게 하면서 돌아왔습니다. 이 머리말 또한 이 책의 서론이면서 결론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성주신앙 연구의 새 집을 한 채 지은 것에 해당됩니다. 가신신앙의 하나인 성주신앙을 대상으로 단행본 수준의 연구서를 처음 펴냈다는 점에서 이 방면의 첫 집을 지은 셈이며, 안동문화와 관련하여 성주신앙의 전모를 체계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제법 도드라진 집을 지은 셈입니다. 방대한 분량의 연구서를 집필했다는 점에서 양적으로 외형이 번듯한 집을 지었을 뿐 아니라, 성주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두루 해명하는 본격적인 논문을 썼다는 점에서 질적으로 내실을 갖춘 집을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책이 보기가 되어 다른 가신신앙 연구도 개설적인 논의에 머무르거나 기존 지식을 되풀이하면서 다른 집의 곁방살이를 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단독주택으로서 번듯한 집을 계속해서 지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집을 이 정도로 짓는 데는 큰 대목 노릇을 한 저자도 땀깨나 흘렸지만, 작은 대목 노릇을 한 조정현 선생 또한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큰 대목이 집을 설계한 다음 재목을 가려서 다듬고 얼개를 짜서 집을 세우는 일을 한다면, 작은 대목은 연장을 챙기고 각종 자재를 때맞추어 공급하며 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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